장갑보병/ 정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감정신 같은 건 이제 좀 부담스럽더라고요=0= 닥치고 액숀이 많았으면 했는데
긴 호흡
내 생애 최악의 크리스마스
Posted on 2009/11/18 21:19
12월이 코 앞이다.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올게다.
착한 척 한답시고 불만을 쌓아뒀다 터뜨리는 성격 탓에 내 연애는 늘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장가가는구나,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다가도 마의 6개월 고지에 접어들면 번번히 차이기 일쑤였다. 연애계의 스프린터, 로맨스계의 토끼쯤 됐다고나 할까-_- 꼽아보자면 만나온 사람들은 꽤 됐지만 단거리에 주력한 탓에 실속이 없었다.
며칠 전 크게 다투기도 했지만 올해는 '차우' 덕에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최근 '크리스마스 포비아'에 사로잡힌 이웃들이 늘어나 위로삼아 내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당시 서른을 목전에 뒀던 나는 '내 생애 크리스마스는 2001년 이미 바닥을 쳤다'며 방심하고 있었다.
핑크빛 망상에 사로잡혀 제대했건만 세상 여인들의 안목이 녹록치 않음을 몸으로 알게됐던 2001년. 나는 '호떡이라도 사먹으면 당분 덕에 행복해지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사로잡혀 크리스마스 아침 츄리닝에 쓰레빠 차림으로 호떡을 사러갔다가 '금일 휴업' 네 글자에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날은 유독 낮잠도 오지않아 급기야 불후의 명작 '십계 3부작'을 누워서 보는 기염을 토했다-_-
각설하고, 2005년 나는 호감을 갖고 있던 걸에게 크리스마스이브 첫 데이트 허락을 받아낸 뒤 서울로 향했다. 그녀가 데이트 동선까지 꼼꼼히 챙겨와준 덕에 나는 설레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재앙은 저녁 무렵 찾아왔다. S는 저렴한 콘셉트를 자랑하는 나의 벗들 가운데서도 유독 하드코어하기로 유명한 친구. 나의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S는 셋이서 같이 놀자고 전화로 졸라댔고, 옆에서 통화를 듣게된 그녀도 난처해하다 결국 합석을 허락하고 말았다.
천천히 와도 좋으련만 미칠듯한 속도로 달려온 S는 신밧드가 선술집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듯 주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재떨이를 주문한 뒤 30초 간격으로 점성이 강한 가래를 뱉어댔던 S 덕에 자리는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해졌고, 그녀는 급기야 9시도 되지 않아 집에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애써 뽑은 리버가 공업 히드라에 박살이 난 프로토스 유저의 눈빛은 감춘 채 난 "이렇게 된 거 니놈 집에서 잠이라도 자고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집이 공사 중이라 잘 수 없어 너랑 찜질방 가려고 나왔다"며 해맑게 웃었다.
S와 더이상 말도 섞기 싫어진 나는 찜질방에 가자마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한 두시간 지났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보니 S가 중학생 서너명과 싸우고 있었다. 요는 '찜찔방에서 그렇게 떠들면 되느냐'는 것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중딩 커플에 배알 꼴린 S의 괜한 트집이었다.
결국 우린 찜질방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고 나는 오랜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와중에도 S는 '밤을 채우지 못했으니 요금을 환불해줘야 하는게 아니냐'며 카운터 아줌마와 승강이 중이었다. 나는 '아, 사람들이 이래서 살인도 저지르는 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이 왔다. 함박눈이었다.
들뜬 마음에 새벽 기차로 상경했던 나는 '그저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던 어머니 말씀을 한 귀로 흘려들은 죄로 딱지를 맞고 축복받을 크리스마스 새벽 와본 적도 없는 서울 동대문 어느 길가에서 호나우딩요 면상을 한 친구와 찜질방에서 쫓겨나 잘곳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오열하는 내게 S는 "이제 PC방 가서 자면 되는데 왜 그러냐"며 의아해 했다.
늘어진 어깨를 수습하고 서울역으로 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산행 첫차로 돌아왔다. 대합실에서는 '새벽에 배웅하니 역 안에서 담배를 필수 있어 좋다'던 S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221cm·150kg의 하승진과 202cm·145kg의 거구를 뽐내는 딕슨의 맞대결은 경기 내내 코트를 후끈 달궜다.
개인 성적은 딕슨의 판정승이었다. 21분32초를 뛴 딕슨은 16점·11리바운드를 올리며 골밑을 점령했다. 하승진도 17점·14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32분을 뛴 결과였다. 딕슨의 파워넘치는 플레이에 '골리앗' 하승진은 2차례나 코트에 쓰러지는 등 수난을 당했다. 하승진도 딕슨을 앞에 놓고 2차례 투핸드 덩크슛을 터뜨리는 등 분전했지만 파워에서 밀렸다.
경기 후 하승진은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다. 짐승, 괴물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당할 거 같다. 정말 힘들었다"고 딕슨과의 맞대결을 돌아보며 가뿐 숨을 내쉬었다. (중앙일보 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동안 농구에 관심을 끊고 있었죠. 지난해 KTF가 캐삽질을 한데다 '미중년 덕장' 추일승 감독이 물러나고 동부의 '멧돼지' 전창진 감독이 새로 부임했었거든요. 뭐랄까, SK 김성큰 감독이 롯데로 부임해온 느낌?-_-
부산 사람들은 뭐든 치열하게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을 그다지 반기지 않습니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서울 발령이 난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지하철 역에 사람 많은 것도 질리는데, 그 사람들이 종소리만 들리면 일제히 뛰는 걸 보고있으면 토 나와"
반대로 타지역 사람들은 부산에 오면 질리는게 '원칙대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다'고 투덜댄다고 들었어요. 틈만 보이면 '행님아' 소리하면서 비비고 들어와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고-_-
이런 기질은 롯데가 10년 가까이 하위권에서 삽질을 해도 매년 최다관객을 동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쟈들이 어데 남의 새끼들이가?" 이런 극단적인 폐쇄성과 만만디 기질이 부산 살 때는 신물 났었는데 막상 서울에 오니 그립네요.
어쨌든 각설하고 근성루키 조성민도 제대하고 성실한 박상오, 김영환의 포텐이 슬슬 터지려는 게 보여 올해 KT 느낌이 좋습니다.
마감도 끝낸터라 수제소시지를 데치고 아껴뒀던 칭따오 한 캔을 따서 꺼내 오랜만에 농구로 채널을 돌렸지요. 세상에나, 나이젤 딕슨이 돌아왔더군요.
2006년 혜성같이 등장해 KTF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단신뚱보센터. 농구는 키가 아니라 심장... 도 아니라 몸무게로 하는 경기라는 걸 보여줬던 맘씨 좋은 딕슨. 당시 KTF는 또다른 흑인돼지 포워드 맥기와 함께 이른바 '투돼지 시스템'으로 KBL을 초토화시켰지요, 그리운 시절-_-
시차적응이 안돼 밤새 호텔에서 23만원 어치 야식을 먹었던 흑인털보. 입국 서류에 쓸 증명사진이 급해서 지하철 즉석 사진코너에서 데려갔더니 안들어간다고 울상짓던 흑인털보. 그의 덩크에 신이 난 팬들이 '딕슨'을 연호하면 경기 중에 얼굴을 감싸며 부끄러워 하던 흑인털보-_-
당시 스포츠신문 박스 기사 대부분은 딕슨이 주인공이었어요. 한 경기 최다 리바운드 27개(이쯤이면 골밑에서 혼자 놀았다고 봐야) 축구 페널티킥 수준의 자유투 (올해는 성공률이 30%수준이라나? ㅡㅡ^)
팬 서비스도 좋은 선수였는데 십자인대가 파열되서 퇴출될 때는 안타까웠답니다. KT&G 선수로라도 무사히 복귀해 반갑습네요, 혹시나 경기를 보게 되면 그에게 박수를^0^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는 뽕쟁이가 이런 기분일까요. 나는 결국 벌벌 떨리는 손으로 땅콩버터 한 통을 카트에 담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풀보풀한 우유식빵에 딸기쨈과 사이좋게 반반 처덕처덕 발라서 입에 넣으니 '예가 홍콩이로구나'하는 황홀경과 함께 제빵사와 한 침낭 안에 들어와있는 듯한 합일감이 느껴집니다.
아, 지난 주 저녁마다 빤스만 입고 옥상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한 건 이제 요단강 너머의 일이 되고 말았네요. 차라리 안먹고 줄넘기 하지나 말 것을. 어스름 저녁 담배피러 옥상 올라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던 옆 건물 아저씨, 미안해요.
역시 마트는 5층 친구와 함께 와야하는 건 데 잘못했나 봅니다. 의,식,주에 이어 이성문제까지 극한에 서있기에 그와 나는 언제나 서로에게 좋은 멘토가 되었죠.
땅콩버터도 이전에 그에게 저지당한 품목입니다. 그는 '젊어 친구를 당뇨로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제 손목을 붙잡았고 나는 가슴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갑자기 연애하게 될지 모르니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목걸이를 세일기간에 두어 개 사둬야겠다'는 그에게 '넌 참 정신나간 색히'라고 등을 두드려 주었어요.
그나저나 얼마 뒤면 친구가 방을 빼서 충무로 부근으로 거쳐를 옮긴다네요. 이제 40대 중졸 미국 백인 노동자 스타일의 내 식생활은 누가 코치를 해줄까요. '야심한 밤에 누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원룸이라도 샴페인은 한 병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철딱서니는 또 어쩌구요.
아, 메시지 수신음이 세번 연달아 울립니다. 현대, 롯데, 하나의 더러운 수전노들이 내 통장 잔고를 깔끔하게 0으로 만들어 놓았네요.